블로그 업뎃 넘 없는 김에... 쓴 지 한 달 넘은 것들... 다 조각인데 이 뒤가 없을 것 같아서... 나중에 막 쓰고 싶어지면 좋겠네... 세 개 다 



1. 쿠로오

사랑하는 척이라도 좀 해 봐, 입술을 물어 뜯으면서 그랬다. 갈라진 붉은 선에서 비린내가 난다. 걔는 내 어깨를 두드리면서 목을 끌어 안으면서 발을 구르면서 발작했다. 끝까지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너무 싫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창백하게 질린 입술을 몇 번이고 씹었다. 걔는 영영 그렇게 기다릴 것이다. 자기에게 저주를 기다리는 저주를 내렸다. 끔찍했고 그래서 너무 좋았다. 나까지 저주에 걸렸어. 걔를 놓아주었을 때 걔는 견딜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팔을 들어서 눈을 가렸다. 나는 어깨 부근을 주먹으로 마구 쳤다. 쟤는 자기가 너무 불쌍해서 우는 것이다. 


나는 그 모든 모르는 척에 질렸다. 입매가 단단했다. 열리지 않는다. 억지로 입을 비틀어 열어도 신음도 내지 않고. 차라리 걔가 나를 악몽이라고 부른다면 나는 스가와라를 불쌍해하지 않을 텐데. 스가와라가 나를 악몽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를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서 제발 자기 앞에서 꺼지라고 하면. 팔을 내린 눈매가 부어있다. 눈 안에 핏줄이 섰다. 소매에 젖은 자국이 선명하다.


너는 네가 제일 불쌍하지.


나도 네가 불쌍해 죽겠어 씨발 진짜...


그래서.


씨발 이게 사는 건가. 스가와라는 인형처럼 늘어져 있다. 팔도 까딱 안 하고 자기가 울었고 상처받았다고, 그걸 모두 보라고 말하듯이 부은 눈을 내놓고 있다. 막 소리지르면서 따지고 싶었다. 너는 내가 그렇게 하나도 불쌍하지 않냐. 하지만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안다. 


내 시체를 상상할 수 있다. 여기 버려져서 죽을 것이다. 그리고 옆에 스가와라는 멀쩡하게 숨쉬는 주제에 더 죽은듯이 앉아있을 것이다. 그러면 쟤 밥은 누가 챙겨주지. 초라해서 미칠 것 같았다. 나는 스가와라가 화풀이를 하는 건지 아니면 정말 상처받은 건지 모르겠다. 유리구슬처럼 너머가 없는 눈동자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닌다. 입을 꽉 닫고. 입술에 남은 상처를 노려보았다. 갈색 얼룩이 잠긴 입술에 번진다. 스가와라의 얼굴 전체로 퍼지고 그 애를 잡아먹는다. 종말이다. 스가와라가 제발 포기하는 법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 쿠로오

추운 계절이다. 불씨가 공중으로 튀었다. 사람들은 사시사철을 가리지 않고 추운 계절이라고 불렀다. 오래된 일이었다. 뿌옇게 흐려진 허공에 숨을 불었다. 계절은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어떤 재앙. 어떤 종말.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 어쩌면 이쪽이 더 재앙에 가까운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헛헛한 온기가 힘없이 흔들렸다. 몸을 말고 소매를 겹쳤다. 매일 재앙을 경신하고 있었다. 이 곳에는 하루에 두 번씩 열리는 문이 있다. 살인범이 버티고 있거나 치명적 바이러스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언제든 그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는다. 스프링이 다 죽어가는 매트리스 사이에 손을 찔러넣었다. 이미 짜부라들어 숨이 빠지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무거운 것으로 누르면 어디든 덜 추웠다. 문간을 쌩하니 노려보았다. 앙상한 나뭇가지가 꼬리부터 불길에게 잡아먹히며 타닥타닥, 비명 소리를 냈다.


*

미친 새끼.

문이 열렸다. 나는 앞과 뒤 대신 중간의 갈색 봉투를 택했다. 안에서 냉동식품이 쏟아졌다. 전기가 지구를 떠난 것은 오래 전의 일이다. 비닐을 이로 찢었다. 한심한 시선이 내게 와르르 쏟아졌다. 비닐이랑 같이 저 멀리에 밀쳐냈다.

처먹을 건 다 처먹고.

뒤지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왜 여기서 지랄인데. 야. 섬세하지 못한 손가락이 무릎을 턱턱 두드렸다. 나는 무시하려고 종이맛이 나는 핫도그를 씹었다. 얼어버린 기름맛이 났다. 뱉고 싶다.

다음부터 핫도그는 가져오지 마.
명령질이야 아주.

너는 진짜 뭐가 문제야? 씨발 진짜 뇌 고장났어?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핫도그는 견딜 수 없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부 흙바닥이나 다름없어서 뱉을 곳이 없다. 기름에 절어있는 밀가루 덩어리를 꾹 삼켰다.

나 입에서 기름냄새 날 것 같아.
지랄 맞은 년.

그렇게 말하고 키스했다. 식용유에 절은 혀와 얼어서 촉각을 상실한 혀가 축축하고 어두운 곳에서 조우했다. 둘 다 장님이나 마찬가지여서 한참을 더듬었다.

이게 종말이야.
웃기고 있네.

웃지 않는 입을 잠깐 바라보았다. 얼어버린 지구에서 동사하려면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

내일이 종말이면 좋겠다.

내일이 되면 기름냄새나는 핫도그도 없고. 장님의 키스도 없고. 나는 숨을 정지하고. 여기서. 나는 문득 말하고 싶었다. 너 그거 알아?

여기서 우리 처음 키스했어.

덧붙일까 하다가 관뒀다. 울렁거리는 표정을 보니 말하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내일을 기다리기로 했다.





3. 오이카와

바람이 휑하니 불었다. 모래가 섞여서 까끌거렸다. 뼈마디가 드러난 손이 모래 덮인 시멘트바닥을 두드렸다. 백조는 숲을 탈출했을까. 나는 백조의 제물이라서 덫에 빠졌다. 숲 안에서는 나무밖에 볼 수 없다.


너 말이야.

목소리는 혀를 타고 나온다. 입술이 말 끝을 먹었다. 한바퀴 돌아나오는 목소리라서 어눌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망설이지 않고 누런 흙바닥에 엉덩이를 뭉갰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갑자기 목덜미가 가렵다. 목을 쓸었다. 생채기는 남지 않겠지. 나는 상처입지 않은 성대를 가졌다.

알았으면 뭐가 달라져?

눈을 가늘게 떴다. 백조는 숲을 떠나서 사막으로 갔다. 그러라고 탈출시켜준 건 아닌데.

알았구나.

백조가 신음한다. 숲에서 도망치느라 발바닥에 가시가 박혔을 것이다. 아니면 심장에. 핏자국이 남았겠지. 까마귀가 백조를 따라가면 어떡하지. 나는 덫 안에서 한 발을 끄집어냈다. 나도 피가 난다.

부탁이니까 나를 위해서 그런거라고는 말하지 마.

피가 철철 난다. 백조는 아름다워서 기적같이 노래한다. 백조는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노래한다던데. 하지만 사막에서 하얀 것들이 말라죽는 것은 당연하다.

나는 너를 구했는데.

나는 중얼거렸다. 어디선가 밀랍 냄새가 난다.

너를 구했겠지. 오로지 너 자신만.

이기주의자. 나는 그런 말들로 상처받지 않는다. 내 성대에 흠집이 없는것은 그런 이유다. 사는데 편리하고 죽을 때쯤 무거울 것이다.

혹시 울어?

이건 순수한 궁금증이다. 이런 걸로 자살하지는 마. 그러면 나는 너를 구한 보람이 없으니까.

너를 저주할 수도 있을 것같아.

감미로운 단어다. 죽음을 앞뒀으니 더 그렇다. 제발 죽기 직전에 나를 떠올려서 저주해줬으면 좋겠다. 그러면 더 오래 저주받을 수 있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조는 웃는 법을 모른다. 옛날부터 몰랐다.

사랑해.

백조는 입을 벌리고 하하, 소리를 내면서 울었다. 모든 울음은 모든 웃음인 법이다. 나는 최악의 연인을 획책했다.

나도.

언어를 오래오래 미워하자고 다짐했다. 오아시스를 잃어버린 백조가 죽기까지 다섯 걸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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