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되었다. 전 애인의 연락을 받고 여기 와 있는 건 조금 바보같다고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물론 그 전 애인이 죽어가고 있고 그런 사람과 이제 와서 같이 살 거라는 건 더 바보같은 사실이었다. 오이카와는 가만히 저 너머를 바라 보았다. 회색 머리가 천천히 언덕을 걸어 올라오고 있었다. 스가와라는 기다리고 기다리게 하는 것을 싫어했던 사람이었다. 스가와라가 끌고 오는 민트색 캐리어가 바득바득 돌바닥에 갈리는 소리를 냈다. 눈이 마주치자 스가와라는 눈을 휘며 웃었다. 여전히 구김이 없었다. 곧 언덕을 오른 스가와라가 오이카와 앞에 섰다. 오랜만이야. 여전히 잘생겼네. 오이카와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생에서 몇 없던 이별의 경험이 다시 돌아왔다. 끝을 보는 시작이었다.
집에 들어선 스가와라는 시작부터 타박이었다. 집이 왜 이래. 청소는 안 하는 거야? 옷 좀 제 때 걸어놓지 그랬어. 그런 말들은 시끄러웠지만 소소하고 익숙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입술은 전과는 다르게 창백했고 벗어놓은 코트 밑으로 드러난 발목은 앙상했다. 오이카와는 마른 침을 삼켰다. 잔인한 사람. 잔인한 인생.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은 오이카와를 슬프게 했다. 바짝 돌아다니며 짐을 정리한 스가와라가 오이카와 앞에 서서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해. 오래는 아니겠지만. 다시 보기를 바랬고 꿈꿨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이카와가 가진 것은 명목상의 거절권일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비어져나오는 감정들을 속으로 밀어넣었다. 감정들이 넘쳐 토할 것 같았다. 목이 아팠다. 불면의 나날이 시작을 알렸다.
스가와라가 돌아오고는 무언가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일상이었다. 평화로웠다. 드러난 것은 그랬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내내 불안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이미 계약할 때부터 명백했기 때문에 어떠한 추가 조항을 달 수도 없는 사항이었다. 그건 오이카와의 소관도 아니었고 스가와라의 재량도 닿지 않는 부분이었다. 시간이 빨랐다. 무엇을 하고 있든 수시로 시간을 쟀다. 늘 시간이 뒤에서 달음박질하느라 헐떡이는 초침의 숨소리가 들렸다. 스가와라는 당연스럽게 아침에 외출 준비를 했다. 어디 가? 오이카와는 한 번 물었고 스가와라는 병원에 간다고 대답했다. 그건 일종의 확인사살이었다. 짧았는데도 내상이 깊었다. 오이카와는 그 뒤로 스가와라가 어디를 가는지 묻지 않았다. 스가와라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대신 출근 잘 하라는 인사가 뒤로 붙었다. 오이카와는 가끔 그 인사가 없어진 후의 일들을 생각했다. 외롭다고 생각할까. 하지만 그러면서도 스가와라의 인사를 저지하지는 않았다.
오이카와는 서점에서 일했다. 퇴근시간이 일정한 편이었다. 스가와라는 늘 오이카와의 퇴근 시간 즈음에는 집에 있었다. 오이카와가 집에 도착하면 무언가가 끓는 소리가 났고 따뜻한 공기가 있었다. 이런 것들은 오이카와의 일상에 포함되었던 적이 없었다. 스가와라는 이렇게 살아왔을까. 오이카와는 어림짐작했다. 온도를 잴 수 있는 생활이 이어졌다. 스가와라는 늘 일상적으로 존재했다. 같이 식사를 하고 오늘의 날씨등에 관해 이야기했다.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건 아마 스가와라의 배려일 거라고,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가끔은 같이 산책을 했다.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오이카와는 지기 직전의 꽃을 생각했다. 스가와라는 가끔 밤에 혼자서 자리를 떴고 그 뒤에는 조용한 신음소리와 약병들이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오이카와는 애써 눈을 감았다. 그런 밤은 꽃다발을 건네는 꿈을 꾸었다. 꽃이 지면 꽃이 아닌 걸까? 오이카와는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오이카와가 본 꽃들은 늘 활짝 피어있었다. 그것들은 시들면 어디로 가는 걸까. 더 이상 꽃으로 분류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걸까. 스가와라가 다시 돌아와 누울 때까지 오이카와는 달을 보았다. 그건 변하지 않았다. 달에서는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드문 위로 중의 하나였다.
어느 저녁이었다. 토오루, 스가와라는 드물게 오이카와를 이름으로 불렀다. 서로를 지칭할 필요없이 말을 건넬 사람은 늘 서로였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들었다. 티비에서 나오는 소음은 얼마나 빛나든, 얼마나 시끄럽든 소음이었다.
나 오늘 병원 다녀왔어.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오이카와는 잠시 뜸을 들이고 느리게 끄덕였다. 두려웠다.
한 달 정도 남았다고 하던데. 그냥... 너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스가와라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 숨소리. 나 이외의 타인의 숨소리. 무서운 건 말일까, 저 숨소리일까. 그냥... 나는 항상 너무 고마웠다고, 말해주고 싶었어. 스가와라가 느릿하게 말했다. 속에서 뭔가가 울컥해서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기껏 목 바깥으로 꺼낸 목소리는 잔뜩 짓눌려 있었다. 오이카와는 더 이상 목소리를 꺼내는 것을 포기했다. 스가와라는 처음 돌아오던 날처럼 환하게 다시 웃었다. 고마워. 오이카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스가와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처럼 소음덩어리들을 보며 웃었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우리 여행 갈까?
스가와라가 오이카와를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였다. 어떻게든 스가와라와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거기 있는데도 마지막은 점점 선명해지고 있었다. 선명한 창 밖의 어둠이 눈을 아프게 찔렀다.
오이카와는 서점에 휴가를 냈다. 크게 바쁜 서점이 아니라서 별로 문제 없었다. 스가와라가 어디를 가고 싶어할까 생각하다가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다. 아프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야 조금 숨이 트였다. 스가와라는 바다에 갈 거라는 오이카와의 말에 별다른 내색없이 그냥 웃었다. 전에 수도 없이 봐온 웃음인데도 점점 그 웃음을 볼 때마다 마음이 시렸다. 기차에 오르고 나서 스가와라는 드물게 들뜬 기색이 있었다. 저는 그때로부터 한참 자랐는데 아직도 스가와라는 제가 알던 그때에 머물러있는 것만 같았다. 너무 아름다워서 차마 쉽게 바라볼 수 없었다. 여전히 환한 사람. 잔인하게도. 마지막에 스러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부족해서 그 전의 빛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사랑하는 이가 무너지는 것을 본 사람들은 안다. 그것이 얼마나 처참한 일인지.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반짝임의 경계에 서 있던 사람이 한 쪽으로 맥없이 쓰러지는 모습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 오이카와는 이제 청년기의 종반을 달리는데도 이런 종류의 일에는 익숙해진다는 말을 적용하기 힘들었다. 스가와라, 네가 나를, 나를 무너뜨려. 스가와라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오이카와는 눈을 감았다.
바다에 도착하자 스가와라는 하얗게 웃었다. 그렇게 웃는데도 아프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을만큼 병색이 완연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너도 빨리 신발 벗어. 스가와라가 신발을 벗어들고 말했다. 물에 들어갈거라고 닥달하는 통에 오이카와가 질색했다.
누가 겨울 바다를 들어가? 꼭 나까지 들어가야 돼?
세 살도 아니고. 오이카와가 진저리를 쳤다. 먼저 바다에 들어간 스가와라가 물을 팡하고 쳐올렸다. 손바닥으로 치는 바람에 오이카와에게까지 물이 튀었다. 야! 혀를 한 번 쏙 내밀고 바다 안 쪽까지 들어가는 바람에 잡을 수가 없었다. 아 진짜. 오이카와가 이미 물에 젖은 코트를 벗어놓고 물 속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스가와라가 깔깔대며 물 속에서 뒷걸음질 쳤다.
그러니까 그냥 들어오지 그랬,
어? 뒷걸음질 치던 스가와라의 몸이 뒤로 살짝 기울어졌다. 코우시! 오이카와가 소리쳤다. 스가와라가 뒤로 넘어지면서 물 속에 주저앉았다. 물보라가 일면서 몸이 흠뻑 젖었다. 어? 스가와라는 물을 한참 맞고도 느린 표정을 지었다. 오이카와가 대신 화를 냈다.
조심 좀 해 너는 말야, 이 겨울에...
물이 깊지 않아서 망정이었다, 라고 말하려는 순간 스가와라가 오이카와의 손을 잡아당겼다. 중심이 확 흔들렸다. 물 속이라서 제대로 균형을 잡지 못한 오이카와가 물에 넘어졌다. 둘 다 물에 빠져서 흠뻑 젖은 꼴이 퍽 웃겼다. 아 니트 드라이 맡겨야 한단 말이야. 머리 끝까지 젖은 오이카와가 툴툴댔다. 그런 모습에 스가와라가 환하게 웃었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서 오이카와는 고개를 숙였다. 얕은 바다에 찬찬히 파도가 일렁였다. 겨울인데도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아 추워! 스가와라는 물 밖을 나서자마자 춥다며 소리쳤다. 그러니까 왜 이런 짓을 해서. 오이카와가 이를 갈았다. 급한대로 잡은 근처 민박집 아주머니도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젊은 애들이라도 이 겨울에 뭐하냐는 타박에 둘 다 멋쩍게 웃었다.
너 진짜 한대만 때리면 안 돼?
샤워를 하고 난 후에 오이카와의 말에 스가와라는 시선을 돌렸다. 빤히 티가 나는게 웃겼다.
전에는 안 그러던 애가 말야.
전에는 너도 이래서 몰랐던 거야. 너도 이랬었어!
거짓말 하지 마. 너 나랑 전에 수영장 갔을 때 물 들어가기 싫다고 그랬잖아?
너 다른 애인이랑 수영장 갔어?
아니 너 진짜 기억 안 나?
대박. 스가와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가와라가 아니었나? 오이카와가 순간 머리를 굴렸다. 헷갈린 거 아닌데!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스가와라가 파고들었다.
자비로운 내가 용서해줄게.
타이밍을 놓친 오이카와가 떨떠름한 표정을 했다. 참내. 그래도 스가와라가 그다지 약해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이렇게 웃었으니까 아마 괜찮을 거라고. 결국 저도 함께 걸어야 하는 길이었다는 걸 아마 스가와라는 알았을 거였다. 그러니까 이렇게 굴었을 거겠지. 코우시, 오이카와가 이름을 불렀다. 수 많은 물음표가 따라붙었다. 왜 그랬어. 알면서. 아파할 거 알았으면서.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스가와라가 오이카와를 바라보았다. 왜? 오이카와는 말을 삼켰다. 아, 그래서 네가 아름다운 거구나. 모든 걸 알면서도 받아들여서. 여전히 나의 꽃.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고. 깨달음이 이토록 느렸다. 한숨이 비명같이 빠져나왔다. 고마워. 차마 말로 하지는 못했다.
그날 밤은 꿈에 꽃다발이 아니라 달이 나왔다. 포근했다. 약병이 달칵거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익숙한 온도가 곁에 있었다. 평온했고 고요한 일상의 조각이 여행길에 있었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다음날 스가와라는 사라졌다. 모든 짐을 가지고. 쪽지 하나 없었다. 아마 찾을 수 없을 거라고, 오이카와는 생각했다. 어제 유난히 즐거웠던건 아마 어떤 암시였겠지. 더 머무르지 않고 기차에 올라 집으로 향했다. 집 역시 깨끗했다. 아무 흔적이 없었다. 거기 있었는데 그 흔적이 온전히 사라졌다는 것이 오이카와는 믿기지 않았다. 서점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오이카와에게 오늘따라 피곤해 보인다며 음료수 하나를 건넸다. 그런 문제가 아니었다. 마지막은 가족이랑 보내기엔 좀 힘들다고 말하던 목소리가 생생했다. 흔적이라도 남겨놓지 그랬어.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찾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찾을 수 있을 곳에 숨을 거였다면 애초에 숨지 않았을 거였다. 비참한 끝을 보이고 싶지 않았겠지. 스가와라에게 그 동안 배려받은만큼은 해줘야 했다. 애써 찾지는 말자. 그렇지만 문득 떠오르는 생각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1년이 지났다. 스가와라의 부음은 아직도 없었다. 스가와라가 사라진 이후 한 달 정도는 기대도 했었다. 돌아와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오이카와는 그래도 죽었다는 소식이 없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생각에 잠겨 바코드를 찍는 손이 공연히 느렸다. 카드를 지불하고 받아가는 손이 퍽이나 익숙했다. 어디선가 봤었나? 살면서 반가운 사람은 별로 없었다. 오이카와는 별 기대 없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시선이 옮겨간 때에 이미 회색 머리카락은 서점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뒷모습까지 저토록 익숙했다. 스가와라! 가게를 나선 사람은 돌아보지도 않고 순식간에 인파 사이에 섞여들었다. 다리에 힘이 탁하고 풀렸다. 그러니까 살아 있는거지? 울음이 속으로 흘렀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꽃이 개화하는 계절이 곧이었다.
제목이 A B 이런건 제목을 지을 수 업기 떄문이다 닌 왜...? 아니 그것보다 더 큰 문제가 있지...맞아...그치만 전력햇다아아ㅏㅏ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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