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가와라 3학년>오이카와 2학년>카게야마 1학년으로 되어있고... 셋 다 같은 중학교라고 되어있습니다...
창문 너머로 길게 그림자가 진다. 오이카와는 낡은 웃음을 꽃피울 줄 아는 사람이다. 늘 비슷한 얼굴. 시선이 자연스럽게 고인다. 아름다운 것들은 대칭적인 음지를 가지고 있다.
카게야마 말이야, 다리 하나 정도 부러져도 괜찮지 않아?
웃음이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면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나는 징그럽게도 그 웃음에 기생하고 있다. 낡은 피아노 위에 놓인 화분은 오래 전에 말라 죽었다. 언제였을까. 오이카와가 내 대답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된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스가와라,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어둡고 습하다. 나는 그런 곳에서밖에 살 수 없다. 오이카와가 한숨을 쉰다.
아무래도 난 네가 정말 필요한 것 같아.
일그러진 언어가 제자리에 맞물린다. 찰칵하는 섬뜻한 공명음이 울린다. 나도 알아. 대답하는 목소리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저열하게도. 오이카와를 만날 때면 늘 바닥을 본다. 까맣고 아무것도 자라지 못한다. 그만해, 그만. 작은 애원은 그곳에서 살다가 죽었다. 시체는 늪이 가져갔다. 나는 목소리조차 갖지 못했다.
그러니까 안 된다고 안 할 거지?
알면서. 다 알면서. 바닥에서는 증오조차 말라 죽는다. 바닥 밑에는 심해가 있나. 아마 오이카와는 알지도 모른다. 하지만 모르는 것과 아는 것을 솔직하게 드러내기에 우리는 너무 나이 들었다. 미간을 문지르는 손이 뜨겁다. 어디선가 까마득한 파공음이 난다. 다시 한 번 추락의 순간이다.
*
오이카와는 중학생때부터 알았다. 내가 2학년이어서 주전을 서지 못할 때부터. 중학 배구부는 어쩐지 엘리트 코스의 느낌이 강했지만 오이카와는 그 안에서도 독보적이었다. 착실하고, 견고하고, 확실하게. 나는 쉽게 포기했다. 그 아이와 세터로서의 재능을 겨루는 일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겁이 많던 시절이었고 오이카와의 그림자는 쉽게 무게감을 키웠다. 이방인들조차 자주 그 애의 손 끝이 어디로 향하는지 주목했다. 하지만 아마 그뿐이었겠지. 말하자면 수재, 잘 쳐서 영재까지는 몰라도 천재는 아니었다. 그건 흐름에서 벗어난 후에야 보이는 것이었다.
오이카와와 한 번 이야기를 해보렴. 감독은 사람을 다루는데는 재주가 없었다. 주전 선발 명단이 붙은 이후로 오이카와는 어딘가 흘려보내는 것들이 생겼다. 얼핏 봐도 알아챌만큼 명확했다. 나는 원하지 않는 것을 받았고 그 대가를 다른 사람이 치르고 있다. 하지만 그런걸로 죄책감을 느껴야 하나. 내가 보는 것들의 기저에는 그런것과는 관계 없는 거부감이 있었다. 그 애는 흐름 안에 존재했는데도 거기서 벗어나 있었다. 오이카와가 서 있는 비틀린 것들의 틈새에서는 조금 다른 공기가 흘렀고 그 공기가 있는 곳에서는 심장이 자주 울렁였다. 감독은 그 공기를 모른다. 모르는 것은 쉽게 건네진다. 그러니까 이건 운이 없었던 거겠지. 체육관을 나서는 오이카와의 뒷모습에 시선이 잠시 머물렀다 곧 떨어졌다. 반쯤 열린 문틈 사이로 가느다랗게 바람이 불었다. 기침이 나올것 같았다.
느지막히 체육관을 나서는 복도에 오이카와가 있었다. 탈의실로 가는 복도는 좁았고 나는 오이카와와 그 복도에 함께 설만큼의 친밀도도 갖고 있지 못했다. 알고 있구나. 나는 체념했다.
혹시 저한테 뭐 말할거 있으세요?
...아니.
아, 오이카와가 깨달았다는듯이 웃었다. 잘 아시네요. 식은 눈동자. 뭘 말하는지가 이렇게도 명백한데도. 애저녁에 포기했다는 말같은건 하지 않았다. 그건 애처로운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아마 그때 알아챘겠지. 말아쥔 손이든 두드리는 발끝이든.
선배가 똑똑하셔서 다행이에요.
그 말을 못 들은 척 지나친 건 맞는 일이었나. 그 뒤로 새로 들어온 1학년 세터는 천재라고 했다. 다들 그랬다. 하지만 아직 개화하지 않았다. 나는 오이카와가 가끔 그 애를 괴롭히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것도 전부 모른척했다. 그리고 윈터컵이 있었다. 준우승을 했다. 그게 마지막 경기였고 나는 학교를 졸업했다. 다시 볼 수 없는 것들이라고 생각했었다.
*
카라스노에서는 주전이 아니었다. 새로운 코트와 공에 적응하는데 2년이 걸렸다. 머무를 필요 없는 것들이 쓸려가는데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3학년이 되었을때 그 천재라는 1학년 세터가 카라스노에 지원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미 그때서 과거를 돌이키기에는 너무 늦었다. 나는 이번에도 여지없이 포기했다. 이건 학습되고 있는걸까. 이름이 카게야마라고 하는 걸 처음 들었다. 중학 시절에는 부른적이 없었다. 다이치가 같은 중학교였는데 모르냐며 몇 번인가 말했지만 그건 이미 버려진 것들이었다. 그걸로 됐어. 모든 것을 쏟아버렸으니 괜찮을 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어떤 꽃들은 가시를 숨긴다.
스케줄러에 손이 긁혀서 피가 났다. 참담할 따름이었다. 카라스노까지 찾아오는 것은 악취미다. 다이치가 탈의실로 보냈다. 바보같아. 오이카와는 전혀 곤란하지 않은 표정을 하고 다쳐서 어떡해요, 하고 물었다. 2년 만인데도 오이카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다만 그 애의 비틀린 사이가 더 벌어져서 공기가 더 많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조금 숨쉬기 힘들었다.
오랜만이네.
그러게요. 선배는 아직도 배구 하시네요.
이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오이카와는 읽고 싶지 않은 것들을 곧잘 실어보낸다. 주로는 경고다. 하지만 탈진한 사람에게 그런건 효력이 없다. 작게 혀를 차는 소리가 전쟁같다.
저는 천재가 싫어요.
천재. 그랬다. 나는 천재가 되지 못한 사람과 앉아있다. 머리가 울린다. 도망치라고. 그 단어는 내가 견딜 필요 없는 무게다. 늘 새로운 포기를 학습하고 있는 나는 오이카와의 이야기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오이카와의 대기는 끈적하고 나는 거기에서 도망칠 수 없다. 탈의실 곳곳에 거미줄이 깔려 있다. 거미줄에 걸려드는 것이 나비만은 아니다.
카게야마 말이에요.
오이카와가 웃었다. 웃었겠지. 1학년 세터는 어렸다. 아주 많은 부분에서. 아마 배구 외에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포기한 적도 없을 거고. 그 애는 말로 사람을 찌르는 법을 모른다. 그런건 오랜만이었다. 나는 과거를 들추는 것들로부터 주로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카게야마는 달랐다. 나를 상처입히기에 그 애는 너무 어렸으니까. 어쩌면 지켜주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그럴 의무는 없고 용기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 좀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위선이다. 나는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았다. 오이카와는 자연스럽게 어떤 접점도 없던 관계에서 위계질서를 만들었다. 포식자는 어디서든 군림한다.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으니까. 그건 나를 끌어당기는 중력이다. 알면서도. 살아가고 있는 동안은 그 인력을 벗어날 수 없다는 걸 아는데도 나는 무의미한 저항을 한다. 모른척 할 수 있던 시절이 좋았다고 생각했다. 사실 아무래도 좋으니 빨리 여기를 떠나고 싶다. 그런 얘기는 못 들은 걸로 할게.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눈을 꽉 감았다. 이런 공기는 버거워서 숨이 막힌다. 락커 안에 물병이 있나.
아 진짜, 선배 그 눈...
멀었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린다. 목 근처에 소름이 돋았다. 순식간에 오이카와가 내 머리를 잡고 반쯤 열린 락커에 처박았다. 금속제가 뎅뎅하니 울리는 소리가 바로 뇌에 꽂힌다. 아파... 일단 아프다고 생각하자 웃기지도 않게 목소리가 늘어졌다. 하, 오이카와가 헛웃음을 지었다.
선배, 잘 들어요. 지금 여기는 카라스노 탈의실이고 문은 잠겨 있어요. 저는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선배 생각해서 말하는 거에요.
소리내지 마시라고. 귀에 바짝 대고 말하는 통에 다시 소름이 올랐다.
너 이러려고 왔어?
지금 하고 싶은 말이 그거밖에 없어요?
이거 강간이야.
설마 모를까봐.
아무렇지 않게 바지를 벗겨내는 손이 차가웠다. 머리가 눌려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울어도 모르겠지. 앞이 깜깜하다. 누가 나를 구해줬으면 좋겠다.
내가 소리 못 지를 것 같아?
그럼요.
나는 선배를 좀 오래 봤거든요. 못할 텐데. 나는 오이카와가 맞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운이 빠져서 다리가 축 늘어졌다. 키득키득 터지는 웃음이 허벅지를 간질였다. 뜨거운 숨이 함께 번졌다. 호흡을 고를 사이도 없이 뒤를 몇번인가 더듬던 성기 끝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고통이 들어차서 모든 생각들을 몰아냈고 그건 아주 강렬했어서 선명했다. 이후 아주 낮은 신음이 몇번인가 등을 타고 흘렀다. 그 모든 시간들은 악몽 속에 있는 기분이었고 깬 후에는 어라, 무슨 꿈을 꿨더라? 하고 되묻게 하는 종류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전부 잊었더라면 아마 좋았겠지. 하지만 다음날 일어났을 때는 소리를 참느라 몇번이고 깨물은 입술이 망가져 있었고 메시지가 한 통 들어와 있었다. 꿈은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나는 반드시 죽어야겠다고 결심했다.
*
그 후로 오이카와는 존댓말을 쓰는 것을 그만뒀다. 그런건 사소했다. 오이카와가 요구하는 것들은 가끔은 유치했고 가끔은 무서웠다. 몇 번인가 카게야마의 체육복을 찢었고 공연히 화를 냈다. 연습 시간을 틀리게 알려준 건 언제였지. 하지만 가끔 막연하게 생각했다. 과연 오이카와는 정말 모를까. 이 모든것이 카게야마에게는 아무 상관 없다는걸. 아마 카게야마는 눈치도 못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 애는 자기의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 그건 온전하다. 누군가 쉽사리 들어갈 수 없다. 그 세상이 버티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이미 잡혔지만 카게야마의 문은 아직 열려있었다. 어디선가 불어온 바람이 그 문을 닫아버리지 않기를 바랬다.
걱정하는 것은 그 날 이후 나의 어딘가에서 오이카와의 대기가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틈새를 공유하는 기분이었다. 아주 약하고, 언제 부서질 지 모르는 낡은 경첩같은 것. 차츰 닮아가는 건 아닐까. 내것이 아닌 악의가 진득히, 꾸준히 달라붙었다. 매일 몸이 무거웠다. 내게는 지나치게 과중한 감정들이었다. 그것들을 받아내느라 매일 벼랑을 걸었다. 가끔 부서져내리는 돌 부스러기들은 위로 떨어졌다. 그래, 처음부터 우리는 닮았지. 하지만 그것만으로 오이카와처럼 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건 태생의 문제였다. 몰랐을까. 그럴리 없다고 생각했다. 오이카와는 카게야마가 아니라 나를 노린 걸지도 몰라. 그렇지만 모든것은 그대로다. 변하지 않는다. 나는 아직도 맞서기를 두려워하는 중학교 3학년에 머물러 있었다.
꽃이 피는 계절이 다 끝나고서야 카게야마의 재능은 봉오리를 올렸다. 주전에 서지 못하는 날이 점점 늘었다. 상관없었지만 다이치는 늘상 미안하다고 말했다. 뭐 어때서. 난 괜찮아. 다이치는 나를 보면 자주 곤란한 얼굴을 했고 그건 당황스럽게도 따뜻한 얼굴이었다. 위로받을 일 따위는 없는데도 그 표정만으로 위로가 되었다. 살면서 받아본 적 없는 가치있는 무언가였다. 그런걸 받아서는 안 된다고, 알았지만 자꾸 스며드는 것까지는 막을 수가 없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다이치가 전부 알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다이치, 고마워.
아마 괜찮다고 말하면 다이치는 믿지 않을 것이다. 그 애는 배구를 소중히 하니까. 다이치가 어물쩡 말을 넘겼다. 이런 세계에서 살고 싶었다. 누군가를 소중히 하고, 느끼는 것을 말해도 거슬리지 않고, 나도 양지를 사랑할 수 있는, 그런.
하지만 나는 그렇게는 살 수 없다. 나는 어쩌자고 발을 들였나. 천천히 차오르는 안개는 이미 목까지 차올랐다. 이대로 질식해서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인터하이 예선에는 카게야마가 섰다. 나는 처음으로 카게야마의 경기를 제대로 보았고 그 애의 재능이 얼마나 눈부신 것인지 확인했다. 그 애는 온전하고 아름답게 경기했다. 누군가는 영원히 쌓지 못할 탑을 당연하게 정복했다. 비로소 오이카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저런 걸 동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렇게 가까운 별을 원하지 않을 수 있나. 그건 일정부분 미학의 문제라고까지 보였다. 알게 된 이상 누구라도 그것을 원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하나의 천재가 여럿의 그림자를 갖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우습다고 생각했다. 알면서도 발버둥 치는 것까지 어떻게 그렇게까지 닮았을까. 하지만 오이카와는 나보다 집요했다. 휘슬이 울렸다. 카라스노는 경기에서 승리했다. 아이들이 우르르 코트 위로 몰려들었다. 나는 반쯤 우월하고 반쯤은 초라했다.
예선 16강 진출이 확정된 이후의 대진표가 나오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유예 시간이 생겼다. 그리고 그건 세이죠도 마찬가지여서 오랜만에 연락이 왔다. 목이 조이는 기분이 들었다.
오이카와가 회관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처음 알았을 때는 정말 답지 않다고 생각했다. 범위 바깥까지 신경쓰기에는 힘들지 않나. 그래서 회관으로 불렀을 때는 어지간히 하기 싫은 모양인가, 하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다르게 오이카와는 그 안에서 잘 섞였다.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오이카와도 즐거워 보였다. 알 필요 없는 것을 보았다. 혼자 앉아서 발끝을 모았다. 괜히 일찍 도착했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이 끝나고 옷을 갈아입고 나오는데는 금방이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어울리네.
뭐... 맞춰주고 있으니까.
어쩌면 착한 사람일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정말로 오이카와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다행이었다.
이제 그런 바보같은 짓은 그만 할까봐.
뭐?
그러니까 이건 마지막이야.
시선이 가차없이 흔들렸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까지 평정을 유지할 수는 없는 고등학생이었다. 사실은 착한 사람이야. 그렇게 누군가가 일러주고 있는 걸까. 오이카와는 어쩌면 여태까지 연기를 해 온 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차올랐다. 너는 도망가고, 나는, 나는, 여기에 다리를 묻고. 나는, 우리가, 닮았다고 생각했어... 여태까지 버티게 해 주었던 콘크리트 덩어리가 철커덩, 하고 바다에 가라 앉고 있다. 그건 내가 작용하지 않는 대상이다. 손 끝에 감긴 실들이 내 마음과는 다르게 움직인다. 이리로, 저리로. 더는 버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힘이 풀렸다. 그리고 몇 마디 말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니까, 마지막으로, 저주스럽게도 나는 거기에 매달린다. 나에게 어떤 가치가 남아있긴 할까? 그리고 그 끝에 오이카와는 여태까지 내가 본 것 중에 가장 달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안 된다고 안 할 거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나는 이렇게라도 살아가야 했다. 햇빛만으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누구도 아프지 않고. 누구도 괴롭지 않고. 좋은 것만, 좋은 것들만. 그리고 나는 사라지고 그림자만 남았으면 좋겠다. 아무 것도 책임지지 않고. 괴롭지 않게. 어떻게 살든 지금보다는 행복할 거야. 오이카와가 가고 나서 나는 혼자 울었다. 유년기는 이미 다 지났는데도 아이처럼 울었다. 초라했다.
*
체육관을 들어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젯밤부터 나는 두 사람 분의 악의를 가지게 되었다. 그건 오이카와가 도망쳤기 때문이다. 나는 여전히 그 틈새에서 새어나오는 대기를 느끼는데 오이카와는 마지막이라고 말한다. 거짓말이야. 몸이 축축 가라앉았다. 악의는 전염되는 거라는 처음의 예상이 맞았다. 나는 병에 걸렸어. 마음이 손짓 하나마다 흔들렸다. 매 번 움직이느라 쉽게 지쳤다. 이 안에 이렇게 있어도 괜찮은 걸까. 하지만 내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피하려고 해도 그건 나의 일에 불과하고 공기는 아무렇지 않게 흘러다닌다. 여기저기를. 나는 조심하느라 차마 디딜 수 없는 곳들까지. 이렇게 섞이다가 모두가 알게 되면 어떻게 할까. 도망치고 싶다. 툭하니 어깨에 닿아오는 손길에 순간 몸을 떨었다.
오늘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픈 게 아니라 너무 무거워서 그래. 그런 건 말해봤자 다이치는 모른다.
좀 그렇네. 오늘 연습은 그냥 보기만 할게.
너는, 어쩌면, 그렇게, 모든 것으로 위로가 될까? 다이치는 유독 다른 사람이다. 동정하지 않고도 위로할 줄 알았다. 고맙게도. 내 말에 다이치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카게야마가 들어온 이후로 체육관에 내 자리는 없어졌다. 내가 쉬어도 연습에 지장은 가지 않는다. 카게야마가 던진 공이 아름답게 네트를 넘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졌다. 나는 무언가를 아무 대가 없이 갖는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한 발자국 얼핏 미끄러지는 것 만으로도 노려지는 늪 속에서 발작하는 나의 삶을 생각했고 내쉬고 들이쉬는 숨에도 대가를 치르는 수없는 생들을 생각했다. 링 위에 서지도 못한 인생들은 또 얼마나 많았나. 그러니까 아마 카게야마, 너는 이 모든 걸 감내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난 거 아닐까. 의미 없이 드나드는 한숨에도 악의가 스몄다. 그림자에서 돋아나온 목소리가 속삭였다. 사실은, 그냥, 질투하는 거 아냐? 질투라니, 그런 건 포기하지 않은 애들이 하는 거야... 내 대답에 그림자가 깔깔 웃었다. 견디기 힘들었다. 무언가가 망가져가고 있다는 걸 처음으로 정확하게 느꼈다.
*
세이죠와 카라스노의 시합은 예정대로 이루어졌다. 카게야마는 경기에 출전했고 나는 벤치에도 가지 못하고 경기장 바깥을 맴돌았다. 문 하나를 두고도 완전히 단절된 세계가 거기에 있다. 오이카와는 경기중에 나를 생각했을까. 마지막이라고 했으면서 내려놓긴 했을까. 휘슬이 울리고 관객들이 소리 지르는 소리가 선명하게 바깥까지 전해졌다. 경기가 끝난 모양이었다. 누가 이기든 그런 건 상관 없었다. 회장 바깥으로 노을이 내려앉았다. 시간이 그토록 잔인했다. 오이카와가 보낸 텍스트가 화면 바깥까지 빛났다. 맞아, 이건 거짓말쟁이의 잘못이야.
내가 장난치는 줄 알았어?
너야말로 마지막이라고 했었잖아.
지금 말장난이 하고 싶구나. 오이카와가 찬 얼굴을 했다.
꼴에 무섭다고 벤치에도 못 왔지. 얼굴 볼 배짱도 없으면서 왜 그래?
그렇게 생각할 줄 알았어.
나는 정말로 네가 마지막인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야. 내 말을 이해했을까? 아마 이해할 수 있었더라면 여기까지는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야, 그것도 쓸모 없었어. 네가 이렇게 나한테 연락을 했잖아... 말 끝이 씹혔다. 머리카락이 밑으로 흘러 눈을 가렸다. 오이카와는 어떤 표정을 하고 있을까? 나는 처음으로 그 애의 얼굴이 궁금했다.
미쳤구나.
잔뜩 질린 얼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을까. 착각이었다고 누군가가 귀에 대고 소리를 지르는 기분이었다. 멍멍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게 다 네 잘못이야. 오이카와가 찡그린 얼굴을 하고는 돌아섰다.
오이카와.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오이카와가 고개만 돌려 뒤를 넘겨다 보았다. 미안해. 나는 그 등을 뒤에서 껴안았다. 헉, 하고 들이키는 숨소리가 가까이서 났다. 손가락 사이로 핏물이 비쳤다. 카게야마는 그게 마지막이었어. 이제 우리는 닮아지자. 내가 가진 것들을 너도 가졌으면 좋겠어. 이젠 내가 너에게 받았던 것들을 너에게 줄게. 그 모든 공기와 악의와 사랑을 너도 가질 수 있게. 그리고 그건, 너도 포기해야 얻을 수 있는거야... 그래야 우리는 같으니까. 얽힌 몸 두개가 한꺼번에 난간 너머로 넘어갔다. 말 한마디 할 사이 없이 끈적한 것들이 스멀스멀 옮겨갔다. 죽지는 않을 거야. 그냥 이건 포기하기 위한 방법일 뿐이야. 이게 최선이야. 그리고 잊지 마, 이 모든 건 거짓말쟁이의 잘못이야! 비명이 흐르는 동안 모든 것이 천천히 지나갔다. 격통이 있고 천천히 눈이 감기고, 그 희미한 사이로 우리 사이의 틈새가 완전히 부서진것이 느껴졌다. 아, 이걸로 됐다. 천천히 눈을 감았다. 모든것은 이제 지금의 일은 아니었다.
처음>> 아 오늘 기분이 별로니까 빨리 저걸 중2하게 끝내자>>>>>>>>끝>>이거 왜 길어??(안 김) 그리고 사실 이게 원래 썼던게 잇엇는데 걍 갈았다 그리고 스가... 이상한 애 만들어서 미안하고... 하지만 난 너의 눈물점까지 사랑할거야...넌 정말 최고고... 최고고... 최고니까ㅠㅠㅠㅠ 걍 일단 올리고 보자 낼 어케되겠짘ㅋㅋㅋㅋㅋ뒷 처리는 내일의 내가 해줄거야!! 띄어쓰기도ㅋㅋㅋㅋㅋ내일의 내가 해줄거야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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