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은 많은 모래와 바람을 가지고 있다. 사막 바깥의 사람들은 그 모래들이 어떤 구성 성분으로 되어 있고 그 모래에서 살 수 있는 생명체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사막을 안다는 건 그런 걸까? 사막은 언제나 무언가를 품고 있다. 가끔은 살아 있는 것들이고 주로는 살아있지 않은 것들이었다. 사막을 마주하지 않는 한 사막이 무엇을 가졌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그건 내가 사막을 비행하며 내린 결론이었다. 밤의 사막과 낮의 사막을 경유하며 나는 사막을 들었다. 사막은 부끄러움이 많아서 모래 바람으로 자신을 가리는 일이 잦았다. 위에서는 더욱 보이지 않아서 듣지 않으면 알 수 있는 것이 더욱 적었다. 나는 그런 것으로도 사막을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고 자존심을 세웠다. 하지만 아마 그때까지의 나는 관찰자였을지도 모른다.




이건 초대일까. 바람이 유난히 많이 불었다. 큰 바람이 경비행기를 대책 없이 잡아당겼다. 비행기의 날개 한 짝이 부러지는 소리가 바람에 묻혀 아득하게 날았다. 흔들리는 조종간을 최대한으로 움직여도 그것보다 더 큰 불가항력이 있었다. 둔탁하게 어딘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먼저 들리고 비행기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아마 추락한 모양이었다. 죽는다고 생각했었지만 어쩐지 살아 남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래에 파묻혀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래도 죽지 않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고, 조금 숨 쉬는 것이 힘들다고 생각한 순간, 창문 밖으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와 마주쳤다. 


텁텁한 공기를 털어내고 애써 비행기 밖으로 몸을 끌어냈다. 사막은 처음으로 나를 끌어들였다. 생각보다 아스라한 공간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것들은 그야말로 무한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아까의 그 사람. 애써 무시하고 찌그러진 틈새로 조종간 옆의 물병을 꺼냈다. 행동마다 따라붙는 눈길은 집요했다. 아무리 잘생겼더라도 이런 건 좀 거북스럽다. 하지만 싫어도 도움을 받아야 할 상대였다.


"죄송한데 비행기가... 좀. 혹시 이 근처에 사시나요?"

"아니, 나는 아주 멀리 살아."

"그러면 혹시 마을로 가는 길을 아세요?"

"길을 아는 사람들은 여기로 안 와."


길을 잃은 사람이 둘이다. 한숨이 나왔다. 사막에서 함부로 움직이는 것은 위험하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아시스는 보이지 않는다. 일단 밤까지 기다리는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밤에는 별이 뜨니까.


"밤에 움직이는 게 낫겠네요."

"너는 우물을 안 찾네."

"우물이 어디있는지 아세요?"

"여기 모래바람을 지나면 있어. 가고 싶어?"


남자의 목소리는 조금 들떠 있었다. 어린 아이가 칭찬받은 것과 같은 목소리였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잘 따라 와야 해. 늦으면 안 돼."


모래바람 속을 걸어도 괜찮은 걸까? 나는 사막을 마주한 적이 없어서 모른다. 아무렇지 않게 걸어가는 것을 보니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남자가 먼저 그 안으로 걸음을 디뎠다. 디디는 자리마다 투명하고 검은 어둠이 동그랗게 퍼져나갔다. 그 안에 별이 떠 있고 은하수가 있었다. 나는 차마 남자를 따라가지 못하고 서 있었다.


"잘 따라 오라고 했잖아. 내가 밟은 자리를 따라 와."


어디인지도 모를 곳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흔적 위에 발걸음이 닫자 잔잔한 파동이 일며 순식간에 흔적이 사라졌다. 나는 그 어둠을 차근차근히 따라갔다. 남자가 걸었던 자리에 열린 것들을 닫으며 나아가는 길이었다. 폭풍의 안은 놀랍도록 조용하고 남자는 흔적만을 남기며 빠르게 나아갔다. 마치 뭔가에 홀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두렵지 않았다.  

천천히 걸어가는 길에 어떤 꽃이 있었다. 그건 사막과 어울리지 않는 붉은 꽃이었다. 그 꽃은 사막과 아주 이질적이었지만 아름다웠다. 어떻게 여기에 피었을까. 힘들게 피었을 꽃이다. 몇 명의 사람들이 이 꽃을 보았고 그 중 얼마가 그 아픔을 읽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사막과 가장 잘 어울리는 꽃인지도 몰랐다. 나는 사막을 오랫동안 보아왔기에 눈을 뗄 수 없었다. 내가 보고 있는 사이 붉은 꽃잎이 눈 앞에서 나풀대며 봉오리에서 떨어졌다. 나는 왜 지금에서야 이 꽃에 당도했을까. 그리고 시선을 뺏긴 사이 폭풍이 불었다. 갑작스러운 바람에 몸의 중심이 휘청하고 넘어갔다. 제자리에서 버티기조차 힘든 바람이었다. 남자가 밟았던 흔적들이 서서히 나 없이 닫히기 시작했고,


손을 잡아오는 체온이 있었다. 남자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잘 따라오라고 했잖아."


어떻게 찾아온 거냐는 물음보다 어떤 안도감이 먼저 차올랐다.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서 넘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너도 욕심 부리지 마."


남자의 시선은 아까의 꽃을 향해 있었다. 남자가 꽃을 보아주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꽃이 별과 은하수 사이로 빠져들었다. 눈 깜짝할 순간이었다.


"아, 아니 저기 아까 꽃이 있었는데, ..."

"가자."


남자가 앞으로 걸어나갔다. 온갖 바보같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질적인 건 꽃이 아니라 나인 걸까. 헤매느라 길을 찾기 힘들었다. 놓지 않은 손이 없었더라면 아마 정말로 미아가 되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사막의 열기와 대비되는 서늘한 체온이 있었고 발 밑에 고이는 우주가 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우물에 도착했다. 남자는 익숙하다는 듯이 도르래를 돌려 물을 길었다. 마법같은 일이다. 나는 사막에 추락했는데 거주자가 아닌 사람을 만났고 그 사람은 우물이 어디있는지 알았다. 그리고 나는 이 모든 것들이 아주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꼈다. 집요한 시선은 이제 나의 것이 되었다. 남자가 물을 건넸다.


"정말 여기 사는 사람 아니에요?"

"여기 사는 사람 같아 보여?"


아닐 거라고 생각하긴 했다. 사실 말하자면 건너면서 나와 같은 사람일까에 대해 생각했다. 


"제 이름은 스가와라 코시에요. 스가라고 부르시면 되는데. 그쪽은 뭐라고 부를까요?"

"나는 어린왕자야. 나는 여기에 살지 않아."


남자가 당연하게 말했다. 이 모든 기묘한 일들은 어디서부터 일어나고 있었을까? 사막이 나를 초대한 시점부터? 아니면 오늘 비행기를 띄운 것 자체가 일련에 포함되는 걸까?


"어린왕자는 양을 그려달라고 한다던데."


멍하니 대답했다. 남자가 웃었다. 


"그건 어린 어린왕자야. 나는 이제 컸거든."


어린이는 자라서 어른이 되잖아. 남자가 덧붙였다. 나는 말을 잇기 힘들었다. 


"어린왕자가 왜 이렇게 자랐는지 알아? 어린왕자는 누구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렸거든. 아주 오랫동안."


남자가 달콤한 표정을 지었다. 살면서 저런 표정을 보지 못했다. 물을 들고 있는데도 목이 타는 기분이었다.


"누구냐고 물어볼 것 같지 않네. 그 사람이 누구냐면 아주 오랫동안 사막을 지켜봐 온 사람이야. 내가 여기 처음 불시착했을 때부터 그 사람이 있었지. 그렇게 사막을 좋아하면서도 단 한번도 사막으로 오지 않았던 사람이야. 그래서 생각했지. 저런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 있을 거야, 하고."


왜냐하면 당신은 모르는 것을 사랑하니까. 모르는 부분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 때문에 전체를 사랑하지. 내가 늘 깨달은 건 누군가에게 나를 이해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거야. 하지만 당신은 이해하지 않아도 받아들였잖아. 그런 존재라는 걸. 말을 마친 남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나는 '누구'가 누군지 안다. 그 사람은 중키에 마른 체격이며 회색 머리카락을 가졌다. 그리고 경비행기를 몰며 오늘 비행기가 추락하여 간신히 우물에 도착했다. 나는 다시금 시선을 뺏기고 말았다.


"나는 이제 누군가를 사랑하는 법을 배웠어. 장미가 있었거든. 하지만 장미가 나에게 모든걸 가르치진 않았어."


자꾸만 최면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나는 발밑에 어둠으로 젖어드는 것을 느꼈다. 남자는 사막에 속하는 사람이 아니다. 남자는 어디에 속하는 사람일까. 알 것 같았지만 자꾸만 모르는 척 하고 싶었다. 어떤 나긋한 목소리가 속삭였다. 너에게 속하는 거야. 너를 찾았어. 알고 있잖아.


"이름이 스가와라라고 해서 나도 이름을 지었어."


오이카와 토오루. 어때? 나를 이름으로 불러줘. 나는 고유한 기호야. 나는 남자가 말하지 않아도 그 남자, 아니 오이카와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오늘 나를 초대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명백했다. 하지만 초대한 것은 사막이 아니라 오이카와일지도 몰랐다.  


그러면, 이제, 나와 함께 가자.


손을 내밀었다. 내게는 익숙한 손이었다. 나를 구했고 나를 지탱했던 체온이다. 망설이지 않고 손을 잡았다. 발 밑에서부터 모래들이 거세게 부딪히며 뒤집혔다. 큰 바람이 다시금 불었다. 부딪히는 모래의 이면에는 우주가 있다. 그는 사막이면서 우주에서 온 존재다. 나의 어떤 부분이 천천히 해체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리고 어딘가로 빠져들고 있다는 것도. 하지만 어둠이 나를 전부 녹이고 나는 중력이 없는 세계로 가는데도 나를 붙잡는 손이 있다. 다 괜찮을 것 같았다. 눈을 감았다. 감은 눈꺼풀의 안으로 까마득한 세상이 펼쳐졌다. 우리는 함께 우주를 헤엄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다른 세상에 존재하는 것 같다. 


저기가 내가 사는 별이야.


우주를 유영하며 오이카와가 손을 뻗어 가리켰다. 작고 노란빛을 띄는 행성이었다. 장미가 피어 있다. 나는 어린왕자의 행성에 불시착했다. 하지만 누구를 기다릴 필요도 없고 구조될 필요도 없었다. 행성이 크게 요동쳤다. 환영식이었다. 







어린왕자 생각하고 썼구여 우주 아닌 것 같지만 우주로 갔으니까 우주야!!!!!!!!우주라구!!!!!!!!!ㅠㅠㅠㅠㅠㅠ 그치만 스가 얘기 써서 행복하다. 진짜임... 살기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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