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은 크리스탈 캐슬 노래에서어



스가와라는 못 본 사이에 문에 도어락을 달았다. 번호를 알아야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번호를 몰라서 초인종을 눌렀다. 시간만큼 초인종 소리가 낡았다. 문 안에서는 순서대로 마루를 밟아오는 소리가 난다. 차분하고 정갈해서 몇 걸음만큼의 거리가 있는지 셀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괜히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가 하면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걸음의 끝에서 약간 고요한 다음 전자음이 났다. 나는 홱하니 고개를 들었다. 가라앉은 회색 머리카락이 문 틈 새로 팔락인다. 기울어진 자세로 문을 붙들고 섰다. 나는 갑자기 조금 멋쩍어져서 오랜만이야, 하고 말했다. 스가와라는 망연자실한 얼굴을 했다. 표정이라기보다 영구적인 흉터같았다. 나는 약간 눈을 찡그리고 뻐근한 어깨를 주무르면서 최대한 뻔뻔해지려고 애썼다. 더 이상 열쇠따위로는 열 수 없는 철문이 천천히 틈새를 벌렸다. 눈을 내리깔았다. 스가와라는 문을 열어주고 주방에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주방으로 갔다. 뒷모습이 잔가지마냥 말랐다. 얇고. 한참동안 주방에서 달그락대는 그릇 부딪히는 소리를 들었다. 스가와라는 아주 다급한 일인 것처럼 주방에 서서 뭔가를 분주하게 끓이고 썰었다. 우리는 눈을 마주치는 대신 서로의 젖혀진 고개나 뒷모습만을 본다. 마치 서로가 서로를 상하게 만들까봐 무서워 하는 것처럼. 그렇구나. 4년을 생각한다. 그 동안 지구는 적어도 한 번 허물을 벗었을 것이다. 무엇도 이상하지 않은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 가열이 끝난 포트가 전자음을 울렸다.  




*


스가와라는 4년을 묻는 대신 차를 끓였다. 푸르스름한 도자기 잔 안에 담겨서 나왔다. 잔 안에서 거품들이 소용돌이친다. 나는 그 속에 담긴 침묵에서 스가와라가 걱정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시간이 말로 꺼냈을 때 망가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가르쳤을 것이다. 나는 내심으로 안도했다. 차라리 그쪽이 위태롭지 않으니까. 물론 이제 위태로운 사람이 되어버린 나는 그런 세심한 배려를 기울이기에는 너무 깨져버렸다. 말하자면 스가와라는 언제든지 나보다 현명한 것이다.


나는 어제도 이곳에 있었던 사람처럼 스가와라의 소파 한 칸을 차지하고 앉아서 침묵을 마셨다. 쓴 맛이 났다. 스가와라는 사명이라도 있는 것처럼 쉬지 않고 책을 꺼내고 먼지를 쓸어냈다. 나는 광고 방송처럼 그런 것들을 흘려서 보았다. 무채색의 잔상이 남는다. 눈에 익은 소품들이 찍혔다.


아직도 여기 살고 있네. 


그 말에 한참 움직이던 팔이 뚝하고 멎었다. 나는 헛기침을 했다. 고개가 동선을 그리면서 돌았다. 스가와라는 지워지지 않는 공허가 묻은 얼굴로 나를 보았다. 깨진 눈동자 사이로 빛이 새어 들어온다. 나는 열심히 기억을 더듬었다. 확실히 그 전에는 함께 우울하지는 않았다. 우울이 전염병이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스가와라는 한참동안 잔뜩 불행한 얼굴을 하고 있다가 이 집을 샀다고 말했다. 


여기를?

그래.


나는 잠깐 그 얼굴을 되짚었다. 스가와라가 원하는만큼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불행한데 불행해지지 못하면 우리는 이제 8년의 공백을 가지게 될 것이다. 물론 8년이 되면 우리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하고 서로를 아마 더 미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무래도 상관없는 일이다. 9년이든 10년이든. 스가와라가 집을 샀다는 사실에 대해서 안도감을 느꼈다. 아직까지 유형의 무언가를 지키고 싶어한다는 것에 대해서. 산산조각 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


기묘했다. 여기를 찾아올 때 쫓겨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때리면 잠자코 맞아줘야지, 하고 다짐도 했었고 물어보면 어쨌든 솔직하게 답해주어야겠다고 각오했었다. 하지만 스가와라는 행복하지는 않지만 어쨌든 나를 내쫓지 않았고 몇가지 말을 해 주었다. 어쩌면 심정적으로 완전히 버려진 것이 아닐까. 만약 궁금하지 않아서라면. 스가와라는 자신의 안에서 나를 어떤 극단의 위치로 내몰아버렸는지도 몰랐다. 환대에서 폐허를 느끼는 것은 위태로워져버렸기 때문이다. 스가와라가 조금 화를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뜨거운 차를 아무렇게나 마셨다. 차는 따뜻하기보다 뜨거웠어서 식도가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금방 잔을 떨어뜨렸다. 삼분의 일 정도 담겨 있던 차가 쏟아지면서 카페트에 얼룩을 남겼다. 둔탁한 충격음. 우리는 순서 없이 차가 스며드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스가와라는 카페트가 둥그렇게 젖어드는 것을 잠깐 보다가 잔을 들어서 치웠다. 나는 얼굴을 마르게 쓸었다. 알 수 없는 것이 많아졌다. 고층 아파트의 창문 너머는 탁한 구름이 자욱하다. 차근차근 걸음을 걷는 스가와라를 보았다. 너는?

  



*


나는 소파에 이불을 덮고 누웠다. 스가와라는 매트리스에 정자세로 누웠다. 전에는 한 쪽으로 등을 구부리고 잤다. 나는 이게 무엇의 흔적인지 모른다. 밤은 변했다.


쉽게 잘 수 없었다. 심야에 바스락대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몸을 이리저리로 뒤척였다. 창문 바깥은 하늘이 검다. 밤에도 구름이 끼었다. 무언가를 감출 수 있을 것 같이 마음껏 뿌옇고 탁했다. 새까만 구름이 눈동자를 타고 들어와서 뇌를 잔뜩 흔들었다. 과거의 모습들. 화내는 방식. 무언가를 숨길 때 짓는 표정. 엿보는 기분이 들어서 급하게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시간이 나를 마구 찔렀다.       


4년을 가졌다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우리는 4년 전에는 사귀었다. 지금 헤어진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아직 사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어둠 속에 잠겨 있는 것들을 보았다. 보이지 않는 것들마저 변한다는 것은 잔인하다. 변한 4년이 있었다면 연애했을까. 이 집에는 짝이 갖춰진 여분의 식기나 혼자 쓰기에는 큰 매트리스 같은 것들이 있다. 나는 그걸 발견했을 때 순식간에 기대했고 닫힌 뒷모습을 보면서 다시 방황했다. 여기에 끝이 없을 거라는 사실을 안다. 나는 지금 헛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중이다.


헛된 것들. 박제된 시간들. 미완결의 후회.


소리를 내서 스가와라를 불렀다. 얇은 목이 천천히 돌아온다. 배꼽 위에 가지런히 포갰던 손이 천천히 이불을 가르고 올라와서 눈을 문질렀다. 나는 어둠 속에서 부자연스럽게 웃었다.


내일 영화라도 보러 가자.


조명 대신 달이 그림자를 만들었다. 픽하고 삐져나오는 숨소리가 났다. 탁, 하고 터지는 파열음이다. 나는 이불을 손 안에서 마구 구겼다. 버석한 숨이 죽는 소리.


그래.


우리는 다시 고요하다. 손톱 끝에 매달린 밤은 이불 안으로 끌려들어갔다. 나는 잠깐 숨을 쉴 수 없었다. 속이 뿌옇다. 사실은 자신이 없다.




*


일어났을 때는 안개가 잔뜩 끼었다. 고층의 삶이란 안개인 걸까. 나는 이불을 개어서 소파 한 구석에 밀어두었다. 개인실에 불이 켜져 있었다. 나는 스가와라를 부를까 말까 한참 망설이다가 그만두었다. 우리는 어쨌든 다시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어제도 여기 있었던 사람같이 평범한 인사를 하는 게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안개가 끼었으니까. 소파에 앉아서 기다렸다. 개인실 안에서 비닐이 바스락대는 소리가 불규칙하게 났다. 그림자가 문 틈으로 졌다가 지워졌다가 했다. 어룽진 자국들이 바닥을 쓸고 지나갔다가 도로 돌아온다. 나는 눈을 찡그렸다. 개어진 이불을 마구 팔로 뭉개면서 기댔다. 방 안에서 창백한 공기가 스멀스멀 새어나왔다. 


벌컥 문을 열었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다. 열린 창문 사이로 바람이 불었다. 커튼이 펄럭거리면서 그림자를 만들었다. 깨지는 소리가 났다. 쾅, 하고, 현실은, 변했다고, 알려주는, 울림, 나는 어젯밤에 막았던 숨을 쉬었다. 속을 채웠던 것이 깊이에서부터 빠져나갔다. 텅 비어서 갑자기 조금 익숙해졌다. 이마를 쓸었다. 망설이게 되었다. 나는 어제의 단어를 곰곰히 생각했다. 그 공허했던 말들. 


문 밖에서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난다. 나는 개인실을 빠져나왔다. 스가와라가 슈퍼 이름이 써 있는 갈색 종이 봉투를 안고 들어왔다. 신발을 가지런하게 벗어놓았다.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불이 켜져있길래. 탁한 목소리가 성기게 빠져나왔다. 스가와라는 봉투를 식탁 위에 세워서 올려놓은 다음 내 옆을 지나서 불을 껐다. 차가운 바람이 묻었다. 끝 부분이 젖은 머리카락에서 샴푸 향이 난다. 나는 몸서리쳤다. 


됐지?


간단한 일이었다. 나는 멍청이처럼 더듬댔다. 스가와라가 옳다. 


영화 보러 간다면서.


아, 그래, 맞아, 허둥지둥 대답했다. 스가와라는 나를 조금 이상한 눈길로 보았다. 눈 끝이 얕게 찌그러졌다. 나는 애매하게 웃는 소리를 냈다. 가서 씻기나 해. 팩하고 돌아서는 뒷모습이 어제보다 닫힌 건지 열린 건지 모르겠다. 나는 눈을 꾹 감았다.  




*



시간을 잘못 맞춰서 오는 바람에 앉아서 한 시간을 기다렸다. 그게 가장 빨리 시작하는 영화였다. 아무래도 좋았다. 우리는 콜라 한 잔을 놓고 얼음을 씹어먹으면서 시간을 죽였다. 집어온 영화 팜플렛을 빈 의자에 뒤집어놓고 영화 소개를 읽었다. 정반대의 중력. 자신이 속한 세상을 벗어날 수 없는 연인. 나는 팜플렛을 도로 뒤집었다. 남자와 여자가 포스터 양 편에서 서로 손을 뻗고 있는 사진이 전면에 박혔다. 손으로 덮어서 가리자 스가와라가 손바닥과 의자 사이에 손가락을 넣어서 팜플렛을 빼갔다. 손바닥을 움츠렸다. 나는 긴장하면서 스가와라의 반응을 기다렸다. 괜찮네. 건조한 목소리가 파스스 떨어진다. 나는 내 손바닥을 빤히 내려다보았다.


왜?


스가와라가 손바닥을 흘긋 넘겨다보았다. 나는 그 하얀 얼굴과 내 텅 빈 손바닥을 내려다보다가 그냥, 하고 말했다. 스가와라는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면서 영화관의 회색 벽에 등을 기댔다. 나는 부우하고 입술을 밀었다. 


갑자기 여기가 이렇게 뒤집히면 좋겠어.

이 영화처럼?

재밌을 것 같잖아.

아침에 일어났는데 천장에서 떨어지면 어떡해.


스가와라는 웃으면서 얼굴을 찡그렸다. 눈물점이 마구 흔들렸다. 나는 따라서 웃었다. 


그래도 영화 해피엔딩이겠지.

글쎄.


스가와라가 입술을 가로로 길게 늘렸다. 끝이 구겨진다. 나는 아마, 하고 대답을 정정했다. 입술이 그제야 위로 둥글게 휘었다. 정반대의 중력. 스가와라가 홍보 문구를 또박또박 소리내어 읽었다. 그런 다음 얼음을 아그작거리면서 씹었다. 부서지는 소리가 요란하다. 스가와라가 텅 빈 컵을 달달 흔들었다. 시간 됐다. 나는 어어, 하면서 웃었다. 쓰레기통에 빈 컵과 영화 팜플렛을 둘 다 집어넣었다. 어쨌든 영화가 해피엔딩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스가와라가 그렇게 말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면서 스가와라는 영화 이야기만 했다. 영화가 재밌었고 여자 주인공이 어떻고, 그런 얘기. 나는 그 이야기를 듣다가 우리가 하루 종일 그런 이야기만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로지 오늘에 대한 이야기들. 나는 어정쩡하게 대답하고 의미없이 웃었다. 스가와라는 괜찮은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는 표정을 하면서 어쨌든 뭔가를 이야기하려고 애썼다. 집에 간신히 도착했을 때 스가와라는 조금 지친듯이 어깨를 늘어뜨렸고 그런 다음 재밌었네, 하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그런 다음 개인실 안으로 쏙하고 들어갔다. 나는 바닥에 앉아서 소파에 등을 기댔다. 우리는 4년 전에도 알았고 5년 전에도 알았는데 이제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갑자기 지쳤다. 아마 스가와라도 그럴 것이다. 


이렇게 과거가 없었다는듯이 굴 거라면 왜 스가와라를 찾아왔을까.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거라면 나는 스가와라를 괴롭히지 않는 편이 좋다. 스가와라가 보낸 4년을 모르니까. 허벅지에서 가시가 마구 돋았다. 다리를 세웠다. 개인실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다. 차라리 그 애가 우는 방식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일주일 동안 스가와라의 집에 있었다. 규칙적으로 대화하고 식사를 함께 한다. 일과같이 그렇게 했다.  의무적으로 대화하는 것과 침묵 중에 무엇이 더 나쁠까 생각했다. 스가와라는 일절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고 매일 매일 그날의 이야기를 했다. 뉴스에서 본 이야기. 오늘 아르바이트 장소에 왔던 손님 이야기. 언제까지 현재만을 살 수 있을까 가늠하면서 이야기들을 들었다. 언젠가 이 일들을 과거라고 읽을 수 있게 되면 슬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녁에는 늘 함께 있었다. 거실에서 라디오를 듣는 것이 일이었다. 나는 그 지지직거리는 소음을 주의해서 들었다. 우리가 보았던 영화 평이 나왔다. 나는 소파 아래에 앉아 있다가 스가와라를 올려다보았다. 스가와라는 라디오를 듣고 있지 않았다. 얼굴을 보면 알 수 있다. 나는 무릎을 손가락 끝으로 두드렸다. 


너는 나쁜 자식이야, 스가와라가 갑자기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말하는 스가와라의 얼굴을 멍하게 보았다. 


나를 때려서 다리를 부러뜨린 다음에 내 지갑을 챙겨서 도망쳤잖아.

안 그랬어.

그럴 수 있다는 거 알아.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말을 하는 스가와라는 손목을 뒤틀면서 입술을 마구 깨물고 있었다. 자해하는 것처럼 아주 고통스러워 보였다. 얼굴이 금방 젖었다. 네가 너무 좋아. 스가와라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들이 꾸역꾸역 목구멍을 타고 역류하는 것처럼 억지로 억지로 다 뱉어내고 있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 애를 끌어당겨서 안았다. 마른 팔이 금방 끌려왔다. 팔로 어깨를 감싸고 등을 두드렸다. 스가와라가 고개를 들었다. 속눈썹 끝에 물방울이 맺혔다가 뺨 위로 떨어졌다. 눈물점이 어룽댄다. 


아주 나쁘게 떠날 거지.

아니야.

너를 보고 있는데 네가 그럴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럴 거지. 스가와라는 확신하듯이 말했다. 나는 금방 우울해졌다. 손가락 하나 하나를 세워서 스가와라의 등을 쓸었다. 튀어나온 뼈가 손가락 끝에 걸린다. 변하지 않는 것. 사라지지 않을 상처를 안다. 우리를 낫지 못하게 만드는 상처다. 우리는 지워지지 않는 아주 희미한 붉은 경계를 하나 갖고 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다. 내가 너를 괴롭히고 있어. 나는 돌아오지 말았어야 했다. 나는 반대 편의 손목을 세워서 그 애의 뺨을 닦았다. 눈물이 마구 번진다. 사과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래도 말 안하는구나.


나는 고개를 숙였다. 스가와라가 내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입술이 웅얼거리면서 움직였다.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으면 아직 그래도 돼. 나는 한참 동안 입을 닫고 있었다. 스가와라가 고개를 들었다. 잔뜩 축축한 표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 사랑해. 어떻게든 간절한 척 하려고 애쓰면서 말했다. 스가와라는 그런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웃었다. 눈이 마구 풀려서 접혔다. 눈동자 사이의 금이 벌어지고 있었다.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 


거짓말.


나는 고개를 마구 저었다. 다정할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스가와라는 아슬아슬하게 윤곽을 유지하고 있는 눈으로 나를 훑었다. 위태로워서 슬펐고 사랑스러웠다. 나는 그 애를 마구 껴안았다. 스가와라가 몸을 거세게 흔들었다. 같이 흔들리면서 이를 악물었다. 제발 그냥 가. 나는 팔에 힘을 더 세게 주었다. 제발. 스가와라는 몇 번이고 그렇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스가와라를 괴롭히고 싶지 않아서 침묵했다. 스가와라는 한참 동안 몸을 심하게 흔들다가 지쳐서 가만해졌다. 나는 그 애의 굽은 어깨를 보았다. 제발 이제 그만 보게 해줘. 다 긁힌 목소리가 그렇게 말했다. 나는 팔을 풀었다. 스가와라가 힘없이 무너지면서 소파에 몸을 묻었다. 이게 다 내 잘못이었다. 내가. 대체 뭘 얼마나 망가뜨리면서 살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갑자기 너무 끔찍했다. 그럴게, 간신히 대답했다. 자음들이 입 안을 마구 찌르면서 나갔다. 둘 다 힘없이 웃었다. 최악이었다.




새벽에 막힌 한숨 소리를 들었다. 끝이 잘린 얕은 신음이 화장실 안에서 타일을 마구 울렸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잠긴 물 소리가 났다. 화장실 문을 발로 차서 열었다. 문고리가 고장났을 것이지만 상관없었다. 닫힌 공기가 빠져나오면서 비린내가 확하고 올랐다. 타일 위로 점점이 박힌 붉은 자국 끝에 스가와라가 있었다. 감긴 눈과 사방으로 마구 튄 핏자국과 하얗게 질려서 늘어진 너와. 어깨를 마구 흔들었다. 스가와라가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나는 급하게 그 애를 당겨서 욕조 안에서 끌어냈다. 잔뜩 늘어진 스가와라가 핏자국이 없는 반대편 팔을 들어서 내 눈 끝을 닦았다. 그제서야 울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가겠다고 했잖아.


스가와라는 띄엄띄엄 말했다. 나는 할 말을 잃고 그 애에게 기댔다.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지 마 제발. 목소리 끝이 흔들린다. 타일이 흔들리는 목소리들을 반사해냈다. 


갈테니까 제발.


손목을 세웠다. 아직도 피가 흐르고 있는 손목 위에 포갰다. 거칠한 상처가 매끈한 피부를 긁었다. 스가와라가 천천히 입술 끝을 끌어당겼다. 좋아해, 새빨간 입술이 그렇게 말했다. 나도. 이번에는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는다. 전부 너야. 스가와라는 행복해보인다. 망가진 이름 두개가 나란하다. 






아무글자 마스터가 되어가고 있다 내 스가 왜 이러케 예민해졌지 중간에 나오는 영화는 이름이 업사이드 다운인데 안 봐서 모루는... 긴 영상 보기 넘 힘들다 근데 집 너무 한국 집이고 영화관 너무 우리 동네 cgv야 튜유ㅠ유 근데 나 이거 막... 너무 그렇다... 아무글자 집대성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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